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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后'한국통', 조선족 젊은이 심봉학의 '꿈'
80后'한국통', 조선족 젊은이 심봉학의 '꿈' 2011.11.10|[흑룡강신문]

중•한 교류 20년, 한국통 조선족 숫자 점차 증가 한국 최대 건축종합회사 동일건축에 건축사로 입사심봉학 (흑룡강신문=선양)초기 중국인의 한국 진출이 쉽지 않았던 시기에 중국에 밀려왔던 한국인 중 '중국 '이 되기를 꿈꾸던 많은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한국

핀란드교육의 성공비결/박승헌 2011.11.03|[중국조선족문화통신]

핀란드는 인구 530만밖에 되지 않는 북유럽의 한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그의 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교육으로 평가받고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15세 학생들의 수학, 과학, 열독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 57개국 40여만명의

2차대전 일제 해남도서 1000명 조선인 집단 살해
2차대전 일제 해남도서 1000명 조선인 집단 살해 2011.11.02|[길림신문]

ㅡ일제의 만행: 해남도 삼아시 삼라촌의 조선인 천인갱(千人坑) 필자는 금년 겨울 국제관광도시로 부상하고있는 해남도 삼아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며 료양하려고 10월 19일 장춘에서 비행기를 타고 삼아에 도착했다. 오기전 삼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선인 천인갱

조선족전통복식은 우리 민족의 얼굴과 생명선
조선족전통복식은 우리 민족의 얼굴과 생명선 2011.10.31|[길림신문]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22) ㅡ전통복식문화를 리드해가는 연길시성월민족복장공장 공장장 최월옥 최월옥(崔月玉)프로필1947년 8월 룡정 동불사 출생 1967년-1984년 룡정현 동불사진 동불남촌 부녀대장, 부녀주임 1984년-1990년 연길시서시장 개체호, 북청당지부 선

영원한 기념비(35)—피로물든 황화산전투
영원한 기념비(35)—피로물든 황화산전투 2011.10.28|[길림신문]

추풍에 락엽 쓸듯이 동북의 광활한 대지에서 국민당군을 섬멸한 추기공세가 끝나서 4일만인 1947년 11월 9일, 동북민주련군 총부에서는 동기공세 작전명령을 각 부대에 하달했다. 적에게 숨돌릴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동북민주련군 각 부대는 12월 15일부터 혹한을 무

영원한 기념비(34)—장당의 백룡산전투
영원한 기념비(34)—장당의 백룡산전투 2011.10.27|[길림신문]

동북민주련군이 발동한 추기공세에서 동북의 국민당군은 큰 타격을 받았고 전략적으로 조직적인 방어체계를 구축할수가 없었다. 섣불리 서만을 공격하던 국민당군은 동북민주련군의 8종대와 9종대의 유력한 타격을 받아 큰 실패를 보았다. 황급해진 동북 국민당군 총사

영원한 기념비(32)—길림주변의 전투
영원한 기념비(32)—길림주변의 전투 2011.10.26|[길림신문]

세번째로 사평을 포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동북민주련군은 다시 송화강이북으로 철수해 병력을 가다듬었다. 이 기회를 빌어 국민당군은 동북 대도시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는 한편 료서지역에서의 작전준비에 몰두하고있었다. 국민당군은 새로 부임된 동북행정원

영원한 기념비(31)—사평공격전
영원한 기념비(31)—사평공격전 2011.10.25|[길림신문]

1947년 5월, 동북에서 전략적반격에 나선 동북민주련군은 의외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해방구에서 국민당군 유생력량을 소멸하면서 크고작은 도시들을 하나하나 점령하였다. 아군의 드센 반격에 밀린 국민당군은 도처에서 실패를 보면서 남은 병력을 주변의 대도

불멸의 발자취(51)—로구교사변 사적지
불멸의 발자취(51)—로구교사변 사적지 2011.10.25|[길림신문]

중국인민의 항일전쟁은 1937년 7월 7일의 로구교사변(盧溝橋事變)으로 시작된다. 로구교사변전 비록 동북과 대만, 하북 등지가 일제의 통치와 예속을 받았지만 반동군벌과 국민당의 타협정책으로 하여 전민의 항전은 시작되지 않았다. 1936년 12월 12일, 국민당의 애국

비평도 일종 창조성작업/성연 2011.10.21|[중국조선족문화통신]

한편의 훌륭한 문학비평문장은 작품에 대한 비평인 동시에 전 사회를 상대하고있다. 문학비평이 문학작품과 문학현상을 대하고있는것이지만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역시 동일한 시대와 동일한 문화경지의 산물로서 전사회를 상대하고있는것이다. 오직 이래야만이 문학비

영원한 기념비(30)—전투영웅 박국제와 전언식
영원한 기념비(30)—전투영웅 박국제와 전언식 2011.10.19|[길림신문]

소리없이 버티고선 로야령산맥은 동만의 대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산과 물은 동북대지에서 판가리싸움을 하고있는 적아 쌍방에게 있어서 모두 공정했다. 드넓은 송화호와 로야령산맥은 우세한 국민당군이 동만으로 들어가는 가장 큰 걸림돌이였다면 지금에 와서는 강

영원한 기념비(21)—참군열조와 전선지원
영원한 기념비(21)—참군열조와 전선지원 2011.10.18|[길림신문]

동북에서의 국공량당간의 겨룸은 주로 군사투쟁에서 체현되였다. 산해관으로부터 금주, 사평, 장춘에 이르기까지 동북민주련은 병력이 부족했기때문에 거듭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우세한 국민당군은 사평, 장춘을 점령함으로써 송화강기슭에까지 공격해왔다. 하지만

영원한 기념비(28)—확고한 동만근거지
영원한 기념비(28)—확고한 동만근거지 2011.10.18|[길림신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시작했다. 산에 들에 두텁게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하였고 양지바른 언덕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여올랐다. 1947년 봄, 엄동설한을 이겨낸 동북민주련군은 동북대지에 줄기줄기 뻗은 장백산맥과 굽이굽이 뻗은 송화강을 사이두고 우세한 국민당군

영원한 기념비(27)—사간방전투
영원한 기념비(27)—사간방전투 2011.10.18|[길림신문]

민주련군주력이 덕혜의 포위를 풀고 철수하자 두률명은 부하 장교들의 사기를 돋구기 위해 이른바 《덕혜승리》라는 거짓 소식을 조작해내고 덕혜전투에서 민주련군 10만을 소멸했다고 떠들었다. 오래동안 승전소식을 듣지 못했던 장개석은 이 소식을 접하자 크게 기뻐

전통음식 중국전역에 보급하는 조선족녀인
전통음식 중국전역에 보급하는 조선족녀인 2011.10.13|[길림신문]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21) -중국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회장 김순옥을 찾아서 김순옥(金顺玉)프로필1980년 7월-1984년 9월 연변대학 법률학부 법학사 1984년 7월-1986년 9월 상해 화동정법대학원 헌법학 전공 1984년 7월-2003년 2월 연변조선족자치주 법조계

영원한 기념비(26)—폭파영웅 조성두
영원한 기념비(26)—폭파영웅 조성두 2011.10.12|[길림신문]

동북민주련군이 다시 송화강이북으로 철수하자 안도의 숨을 쉰 동북 국민당군총사령인 두률명은 1947년 1월 30일에 4개 사단의 병력을 모아 두번째로 림강을 공격했다. 국민당 52군 195사는 자기의 전투력과 현대화한 무기를 믿고 단독으로 근거지에 깊숙이 들어왔다.

영원한 기념비(25)—화수림자전투
영원한 기념비(25)—화수림자전투 2011.10.12|[길림신문]

해방전쟁시기 동북의 국민당군과 동북민주련군은 천연장벽인 장백산의 로야령산맥과 송화호를 사이두고 대치하고있었다. 동북민주련군은 송화강동부에 포진하고 로야령산맥에 의지해 국민당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수시로 강을 건너 송화강서부 국민당군의

영원한 기념비(24)—림강보위전
영원한 기념비(24)—림강보위전 2011.10.11|[길림신문]

1946년말부터 1947년초까지 남만의 상황은 극히 어려웠다. 국민당군이 화전, 반석, 매하구, 통화를 차지하고 반월형으로 림강을 중심으로 한 근거지를 포위했다. 수만 군인과 난민이 림강에 몰려왔기때문에 근거지의 물질적조건은 극도로 결핍했다. 게다가 군민들은 겨

영원한 기념비(23)—림강으로
영원한 기념비(23)—림강으로 2011.10.11|[길림신문]

흑룡강성 할빈시 서남부로 30킬로메터 떨어진 곳에는 85만 인구를 가진 소도시 쌍성시가 있다. 송눈평원에 위치한 쌍성시는 예로부터 흑룡강성의 남대문으로 불리워왔다. 해방전쟁시기 동북민주련군은 교통이 비교적 발달한 쌍성시에 전선지휘부를 설치하였고 동북민주

라림하강반에 활짝 핀《민족의 꽃》
라림하강반에 활짝 핀《민족의 꽃》 2011.10.10|[길림신문]

- 민족향발전 본보기 연화조선족향을 찾아 (2)유수시 연화조선족향 리장수서기 장춘지구 유일한 조선족향인 유수시 연화조선족향, 3개 행정촌에 9개 생산소조, 2714명 인구를 갖고있는 작은 조선족향이 편벽한 지리위치 등으로 기타 지역보다 뒤떨어져있던것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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