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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50)—김원봉과 남경의 사적지들
불멸의 발자취(50)—김원봉과 남경의 사적지들 2011.10.09|[길림신문]

1930년대 남경은 중국 관내 조선인 혁명자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중심지로 부상하였다. 김구와 한국림시정부가 남경에 와서 민족통합운동을 전개하였을뿐만아니라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의렬단도 남경으로 본부를 옮겼다. 김원봉은 대일전선통일을 이룩해내고 각파 혁명

백색가전 글로벌 챔프 하이얼 한국 틈새시장서 성장가도
백색가전 글로벌 챔프 하이얼 한국 틈새시장서 성장가도 2011.10.07|[흑룡강신문]

하이얼 코리아 김병렬 대표 인터뷰 (흑룡강신문=칭다오) 하이얼이 한국에 진출한 지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이얼은 시장 진입에 있어 진입기, 정착기, 선도기의 3단계를 밟게 되는데, 현재 하이얼 코리아는 두 번째 단계인 정착기에 접어들고 있다. 김병렬 하

자식들에게 《부친상》을 /오기활
자식들에게 《부친상》을 /오기활 2011.10.07|[중국조선족문화통신]

오기활 미국인구중 유태인의 비례가 3%지만 미국 유명대학교수의 30%가 유태인이고 미국 억만장자의 40%가 유태인이다. 유태인은 세계인구의 0.25%지만 노벨수상자의 33%가 유태인이다. 유태인의 이런 우수성은 《책의 민족》으로 불리는 유태민족이 어릴 때부터 가정에

영원한 기념비(17)—화전군정대학과 길동군정대학
영원한 기념비(17)—화전군정대학과 길동군정대학 2011.10.05|[길림신문]

1946년 국민당군이 장춘과 길림시를 점령하자 길림성 당위원회와 성정부는 돈화를 거쳐 연길에 도착하였다. 따라서 길림성 군구와 정부기관, 군정학교가 모두 연길로 옮겨졌고 연길은 동만해방구의 정치,군사 중심지로 되였다. 그리고 연변지역은 동북에서 우리군의 가

영원한 기념비(16)—북만 토비숙청
영원한 기념비(16)—북만 토비숙청 2011.10.05|[길림신문]

1946년 6월 26일에 장개석은 중경평화담판의 합의서를 찢어버리고 화북에 집결한 수십만명의 국민당군을 동원해 해방구를 공격하였다. 이로써 반파쑈전쟁이 승리한후 중국에서의 평화적인 노력은 모두 무산되여버렸고 전면적인 국공내전이 시작되였다. 근 1년간의 시간

영원한 기념비(15)—적과의 대치
영원한 기념비(15)—적과의 대치 2011.10.04|[길림신문]

1946년 5월 18일, 사평에서 철수한 민주련군은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20만 병력을 송화강이북으로 철수시켰다. 5월 22일에 동북국은 장춘으로부터 할빈에 철수하고 국민당군은 23일 장춘을 다시 점령하였다. 28일 중국공산당 동북국의 지시에 따라 길료성

영원한 기념비(14)—전략적 후퇴
영원한 기념비(14)—전략적 후퇴 2011.10.04|[길림신문]

피어린 장춘 쟁탈전이 끝났다. 전반 전투에서 조선족 열혈청년들로 구성된 조선퇀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려움없이 싸우면서 장춘을 점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희생도 적지 않았다. 일반 전사로부터 퇀장, 부퇀장에 이르기까지 280여명 우리 민족의 훌륭한

영원한 기념비(13)—장춘쟁탈전 하편
영원한 기념비(13)—장춘쟁탈전 하편 2011.10.03|[길림신문]

1946년 봄, 동북에서의 국공량당간의 겨룸은 무력투쟁과 담판의 형식으로 진행되고있었다. 미국제 무기로 무장한 국민당 10여만 주력군이 심양으로부터 본계, 사평으로 공격태세를 취했고 동북민주련군 총사령인 림표는 손에 장악한 팔로군, 신사군 주력부대를 사평부근

영원한 기념비(12)—장춘쟁탈전 상편
영원한 기념비(12)—장춘쟁탈전 상편 2011.10.03|[길림신문]

1946년 2월에 쏘련군의 철수문제가 첨예하게 제기되였다. 이때는 장개석도 대량의 정예군을 동북에 진입시켰기때문에 쏘련군의 철수를 더 지연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정부의 촉구도 심해졌다. 미영정부는 쏘련은 주둔기한을 연장한 기회를 빌어 밤낮을 가

불멸의 발자취(49)—김구와 림시정부 요원 피난처
불멸의 발자취(49)—김구와 림시정부 요원 피난처 2011.09.30|[길림신문]

1931년 《9.18》사변을 통해 일본침략자들은 중국 동북을 강점하였다. 부유한 동북대지는 일제가 더욱 큰 야망을 실현하는 중요한 기지로 전락되였고 수천만 동북사람들이 일제의 압박과 략탈에 시달려야 했다. 일제의 중국대륙침략은 수억 중국인민의 강렬한 반항을 불

영원한 기념비(11)—북만과 남만에서
영원한 기념비(11)—북만과 남만에서 2011.09.29|[길림신문]

일제가 패망한후 동북에는 토비가 많았다. 이가운데서도 흑룡강성의 토비가 특히 살벌했다. 리화당(李华堂), 사문동(谢文东), 마희산을 두목으로 하는 크고작은 비적떼는 한때 북만 3분의 2 지역을 장악하기도 했다. 비적들은 공산당 간부를 살해하고 백성의 재물을 략

영원한 기념비(9)—동만 토비숙청 상편
영원한 기념비(9)—동만 토비숙청 상편 2011.09.28|[길림신문]

1945년말에 이르러 중국공산당은 신속한 행동으로 동북 대부분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였고 자유와 해방을 위해 새로운 전투에 뛰여들도록 동북의 광범한 여러 민족인민을 단합시켰다. 항일련군속의 조선인 간부와 조선의용군은 신속히 남만, 북만, 동만에 진출해 조선인

영원한 기념비(5)—남만에서의 조선의용군 1지대
영원한 기념비(5)—남만에서의 조선의용군 1지대 2011.09.26|[길림신문]

팔로군 주덕총사령의 제6호명령에 따라 동북으로 진출해 심양에 모인 조선혁명가들은 군인대회를 열고 중국내의 조선족을 보호하고 중국인민의 해방투쟁에 참여할 방침을 확정지었다. 군인대회의 포치에 따라 조선의용군 제1지대, 제3지대, 제5지대가 신속히 조직되였으

연변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새 연변사람》
연변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새 연변사람》 2011.09.23|[길림신문]

[길림신문이 만난 사람]유대진프로필 1959년 10월 10일 한국 충남 논산군 출생 한국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 졸업(1990년) 미국 이민(1993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국제대학 심리교육학과 수료(1996년) 미국 샌프랜시스코 한이 TV뉴스 앵커(1995년―1996년) 일요시사 신

[녀기업인 실화 23] 내가 알고 네가 알고
[녀기업인 실화 23] 내가 알고 네가 알고 2011.09.23|[길림신문]

눈물로 얘기한다. 허심탄회한 인생고백, 성공기업문화의 정수, 리얼한 현장스토리... 저자 김성순 련재순 一、소영이를류학보내면서 二、초창기시련 三、갈등을넘어서 ●내가본정영채회장 1. 만남 2. 죽음을체험하다 3. 정영채회장중풍 4. 별장에숨은 정 5. 정영채회장

영원한 기념비(4)— 오가황 조선의용군군인대회
영원한 기념비(4)— 오가황 조선의용군군인대회 2011.09.23|[길림신문]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광복을 맞이했지만 가난한 조선족농민의 살길은 여전히 험악하기만 하였다. 비록 쏘련군이 대도시를 점령하고 치안을 유지한다지만 기타 소도시와 농촌은 토비들의 성화가 극심했다. 게다가 국민당특파원이 동북에 들어와 일본군 포로, 괴뢰만주국

재한조선족 근로자 민생론/채영춘 2011.09.22|[중국조선족문화통신]

며칠전 재한조선족 근로자들의 실태를 다룬 한 해외방송사의 TV스페셜을 본적이 있다. 서울 가리봉지역 연변조선족 로무일군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이 기자인터뷰와 더불어 폭넓게 조명된 영상프로그램이였다. 의지가지없는 이역땅에서 단 하나의 목적—돈을 벌기 위해 눈

영원한 기념비(3)—조선의용군의 동북진출
영원한 기념비(3)—조선의용군의 동북진출 2011.09.22|[길림신문]

중경에 자리하고있던 국민당통수인 장개석은 일제패망후 전국범위에서 자기의 독재통치를 실현하려는 야심을 품고 세력확장에 서둘렀다. 이를 실현하려면 중국 서남부와 서북부에 모여있는 국민당정예군을 신속히 전국 각지 특히는 전략적요지인 동북에 보내야 했다. 일

축구로 재한조선족의 이미지 향상에 한몫 하겠다
축구로 재한조선족의 이미지 향상에 한몫 하겠다 2011.09.19|[흑룡강신문]

재한중국동포축구련합회 곽용호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 서울, 가리봉동, 대림동 조선족 밀집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을 보느라면 '재한중국동포축구련합회 회원모집'광고를 심심찮게 볼수 있다. 이를 보느라면 역시 우리 민족은 축구를 떠나서 살수 없는 민족이구나 하

영원한 기념비(1)—《8.15》광복의 의미
영원한 기념비(1)—《8.15》광복의 의미 2011.09.16|[길림신문]

《모택동의 평가》정순주장군의 서예. 1945년에 들어서서 아마 조금이라도 정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을 얼마든지 판단할수 있었을것이다. 당시 중국내에는 근 200만에 달하는 조선인이 살고있었다. 이들은 동북뿐만아니라 관내 화북, 화동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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